2017년 11월 16일
정치호
그친구와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3년 내내 같은반이었고, 성을 기준으로 order by asc 하는 당시 학교의 정책에 따라 
그친구는 36번, 나는 38번. 때로는 바로 앞뒤번호를 쓴 적도 있었던거 같다.
항상 같이 다녔으나 사소한 일로 다투고, 먼저 사과하는 사람은 항상 그 친구 였던것 같다.

그친구는 공부를 매우 잘했다. 될때까지 외우는 다른 유형의 상위권 애들과는 달리,
문맥을 잘 파악하고, 중요한 내용을 파악하는 친구였다.

잘 돌아가는 그 머리로 고스톱을 매우 잘 치던 친구였다.
상황 판단 능력이 아주 좋은 탓에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갈때는 쑈당;을 설계해서 거의 대부분을 지지 않고 게임을 이끄는 편이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좀 더 좋은 대학을 가겠다며 모두가 부러워하던 대학에 자퇴를 하고
재수때 시험을 망했다.
삼수를 시작해서 더 망해서, 그냥 평범한 대학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한번도 못봤던 그 친구를
군입대 전에 3년만에 만나 술을 마시고는 당연히 전역 할때까지는 못 만날줄 알았다.

그친구는 군감찰실에서 운전병 == 비서; 를 하며 정보장교를 통해
내가 배치받은 자대를 알아내고 부대로 직접 전화를 했다.
"XX 사단 감찰실인데 ** 이병과 통화 가능합니까" 라고 시작된 그 전화 통화로
우리부대가 뒤집어지고, 그건 녀석이 나를 배려한 설계였다.

전역을 하고도 자주 볼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녀석은, 법대생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본다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도 내 나름대로 바쁘던 시절이었다.

내가 먼저 취업을 하고, 녀석은 신림동으로 들어갔다.
1차 시험에 합격후, 만나 마신 술에 안경을 잃어버릴정도로 만취하였고 나는 진심으로 그녀석을 축하했고
곧 다가올 2차 시험도 잘 보라며 독려했다.

27살, 28살, 29살. 2차시험은 쉽게 녀석의 합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기간 여행을 떠나기 전, 녀석과 술자리를 한번 갖았다.
핸드폰도 안들고 다니던 놈이어서 약속이 조금만 어긋나면 참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으나
대충 약속장소에서 한두시간;; 기다리면 나오곤 했다.
삐삐. 삐삐나 들고 다니고 싶지 핸드폰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년 초 부터는 대기업 법무팀에 면접을 볼거라고 했다.

2006년 가을, 여행중이던 캄보디아에서
그 느리고 더딘 인터넷을 1시간 가까이 대기해서 그해 합격자 명단에서 녀석의 이름을 찾고는
마치 내일처럼 기뻐해줬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 다시 만났을때는 사법 연수원생 월급으로 그녀석이 술을 샀다.
나는 그친구가 검사가 되길 바랐으나
판사에게 굽신거리기 싫고, 재판장에 출석하는게 싫어서 그냥 법무팀에서 법률자문이나 하면서
6시에 퇴근하고 인생이나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었다.

연수원을 수료한 후, 꽤 오랜기간동안 취업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변협에 등록하지도 않아 변호사 면서도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변협등록비는 법무법인에서 내주는게 관례. 개업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내가 조언할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고시원시절보다는 자주 만나 술을 마시곤 했다.
같이 여자도 만나러 다녔고, 이태원에서 날밤도 새며 놀기도 했다.

예전 고삐리때 마냥, 사소한일로 다투고난 얼마후.
그때가 2012년도 겨울이었더낙, 2013년도 봄이었던가.
뜬금 없이 전화를 해서는
당분간 못만날것 같다고 했다.
삐져서 그런줄 알고 화를 버럭냈던게 기억난다.

그 뒤로는 만난적도, 연락한적도 없다.

재미삼아 설치한 트위터 알람이 울리길래 보니 그 친구 얼굴이 보였다.
반가운 얼굴이 보이니 반가웠다.
반가운 얼굴이 보인것까지는 좋았으나 친구 이름앞에 故 가 붙어있었다.

핸드폰을 열어 녀석의 전화번호를 검색해 보았으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뭘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있다가 뉴스를 검색해보았다.


그는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실 소속 변호사였다. 2남1녀 중 막내로 미혼이었던 그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동생이었다. 2006년 31세의 늦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정부 기관을 거쳐 2011년부터 국정원에서 일했다. 국정원으로 옮긴 뒤에는 부모님 집에서 나와 경기도 과천에 혼자 오피스텔을 얻어 살았다. 가족도 그가 사는 곳을 몰랐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소속변호사를 검색해 봐도 그의 이름엔 ‘미개업’ 외에 아무런 정보도 나오지 않는다.  
 
비극의 단초는 2013년 10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와 재판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국정원 현안 TF에 배속되면서 시작됐다. 현안 TF에선 검찰 간부 출신의 감찰실장과 검찰에서 파견 나온 검사들이 함께 일했다. 가짜 사무실을 만들어 압수수색 나온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을 유인하고 국정원 직원들이 검찰과 법원에서 허위 진술을 하게 했다.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방해한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국정원이 법을 준수하도록 심사하고 자문해야 하는 법률보좌관실이 관여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그가 현안 TF의 불법행위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입사 3년차 5급 사무관이자 변호사 경력뿐이었던 그가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현안 TF의 공작은 치밀했다. 검찰과 법원은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국정농단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일이 없었다면 완전범죄가 됐을지 모른다. 지난 9월 국정원의 정치개입 수사가 본격화된 후에도 검찰의 수사망은 다가오지 않았다.

반전은 우연한 계기로 일어났다. 자신은 구속됐는데 불법행위를 지시한 윗선의 구속영장은 기각된 데 분노한 국정원의 한 간부가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검찰로선 용인하기 힘든 사법방해 행위였다. 제 식구가 연루돼 있었지만 수사를 주저할 수 없었다. 

그도 지난달 23일 월요일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조사 직후에는 검찰 수사를 놓고 동료들과 농담까지 나눌 정도로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6일 목요일에는 사색이 다 된 표정으로 출근했다. “제가 다 뒤집어써야 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어요.” 그가 불안해하며 남긴 말이다. 이틀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가족도 동료들도 제대로 모른다. 현안 TF에서 함께 일했던 검사들과 몇 차례 통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또 다른 누군가와 만나거나 통화를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불길한 인사말을 남긴 채 27일 하루 휴가를 냈다. 28일 토요일에는 강원도 원주로 가서 고등학교 때 단짝친구를 만났다. 뭘 하나도 먹지 못해 음료수를 하나 시켰는데 반병도 마시지 못했다는 게 친구의 증언이다. 그는 29일 오전 9시30분 강릉 주문진 해변에 나타났다. 다리 위에 차를 세워놓고 투신했지만 행인의 신고로 해양경찰에 구조됐다. 

2시간 만에 귀가 조치된 그는 이날 오후 군복무를 했던 춘천으로 갔다. 춘천은 그가 군법무관 차량 운전병을 하며 처음으로 법률가의 꿈을 키웠던 곳이었다. 이튿날인 30일 밤 9시10분쯤 소양강댐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량 안에서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행적을 보면 의문투성이다.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주문진에서 한 차례 실패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겪고도 다시 죽으려 했다. 그에겐 그럴 이유가 없었다. 처벌을 받아도 무거울 리 없었다. 국정원에서 일을 못하게 돼도 변호사로 개업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다급하게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의 죽음은 자살인가, 사실상 타살인가. 그와 함께 국정원 현안 TF에서 일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도 6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들의 잇따른 죽음은 우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유족들은 더 이상 그가 국정원 정모 변호사로 불리길 원치 않는다. 그는 정치호 변호사다. 

송세영 사회부장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45863&code=11171213&cp=nv

뉴스를 보니 그의 마지막 행적을 알 수 있었고, 원주에서 만났다던 단짝 친구가 누구인지도 짐작이 갔다.
2013 년도에 당분간 만나기 힘들것 같다는 말을 한 이유도 알것 같았다.
직접 벌인일이 아니라 그가 처벌을 받을리도 만무했고
있더라도 가벼웠을것이다.

자살을 시도했다 살아난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라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다시 시도 하지 않는다.

번개탄불 피워 자살하겠다는 놈이 바닥에 쿠킹 호일을 깔지는 않는다.
죽을놈이 차 바닥이 탈걸 걱정할까?
차 바닥 메트가 타면 연기가 메케할걸, 그걸 죽을려고 마음먹은놈이 걱정할까?
의혹이 많은 죽음이다.
어느 죽음이 아쉽지 않겠냐 마는, 아쉬움 투성이의 죽음이다.
이건 자살이 아니다. 
by 꼭사슴 | 2017/11/16 18:32 | GRUMBLE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 다음 페이지 >>